건축분야의 최우수발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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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국가최우수발명가상을 수여받은 사람들중에는 평양건축대학 건축과학연구소 실장 원성림도 있다.
원성림에 대하여 말할 때 그의 아버지인 원하옥에 대해 먼저 말하지 않을수 없다.
공훈과학자 원사 교수 박사 원하옥(1931. 10. 10-2000. 5. 6.)은 우리 나라에서 무심도판기초리론을 제일먼저 내놓은 사람이였다.
원하옥이 건축에 뜻을 두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해방(1945. 8.)된 조국땅우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그는 미제가 일으킨 전쟁(1950. 6. 25-1953. 7. 27.)에 의하여 자기의 정든 집과 고향마을, 온 나라가 처참하게 파괴되는것을 직접 목격하게 되였다. 치솟는 적개심을 안고 용약 전선으로 탄원하였으나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뜻밖에도 외국류학을 가게 되였다.
당시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최고사령부의 작전대우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설계도가 펼쳐지고있었으며 그에 필요한 유능한 건설인재들을 하루빨리 육성해야 할 과업이 나서고있었던것이다.
외국에서 대학과 연구원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그는 귀국후 평양건축대학(당시 건설대학)의 교원, 강좌장, 과학연구소 소장 등을 력임하면서 나라의 건설공학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60년대에 그가 연구개발한 당김판기초(막기초)는 평양체육관을 비롯한 여러 대상들에 도입되여 그 실효성이 뚜렷이 증명되였다.
원하옥은 자식들의 훌륭한 아버지이면서도 엄격한 스승이였다. 그는 여섯남매중에서 셋째인 원성림에게 자기의 리론과 기술을 전수하였다.
그에 대하여 원성림은 아버지는 자기가 일하는 곳에 늘 나를 데리고다니며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고, 내가 창안한 판기초공법들도 아버지의 사심없는 방조를 떠나 생각할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1980년에 원성림은 희망대로 평양건축대학에 입학하여 아버지의 판기초리론을 더욱 완성시켜나갔으며 그 과정에 건축공학기사의 자격을 받았다. 그의 론문 《해석적방법에 의한 모래초반판기초내력결정에 관한 연구》는 학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의 판기초공법은 만경대학생소년궁전건설에 도입되여 공사기일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게 되였다.
그후 박사원교육과정을 마친 그는 1990년부터 평양건축대학 건축과학연구소에서 연구사업을 시작하게 되였다.
탄성섬유띠를 비롯한 합성구조재료가 개발되는 오늘날 당김판기초의 발전전망은 더욱 커지고있다.
2015년 평양시체육촌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대부분이 진펄로 되여있는 이곳 체육관건설장에서는 기존공법인 교반말뚝공법으로 기초시공을 진행하고있었는데 그 방법으로는 많은 로력과 자재가 드는것은 물론이고 제정된 공사기일도 보장할수 없었다.
이러한 때 지대적특성으로 보아 당김판기초공법으로 건설하는것이 합리적이라는 원성림의 방안은 사람들을 놀래웠다. 막중한 건물하중을 견디여내겠는가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도리머리를 저었으나 그의 확신에는 변함이 없었다. 과학적인 담보밑에 그의 공법을 받아들인 결과 현장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수개월로 예상했던 시공을 단 2일만에 끝내였던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정말 상상밖의 일이라고 하면서 실리있고 독특한 공법을 내놓은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현재까지 수백개 대상에 대한 건물지반과 기초시공안을 새롭게 창안도입하였다.
그가 내놓은 고층건물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진흙물벽보호주입말뚝공법, 건물의 기울임방지를 위한 보강말뚝시공방법, 무근콩크리트말뚝복합지반, 륵골있는 판기초, 기초블로크가 있는 함형기초, 콩크리트다짐말뚝의 배근방법 등 10여건에 국가발명권이 수여되였으며 그것은 전국과학기술축전, 전국건설부문과학기술발표회 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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