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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가정의 가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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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날자 26-09-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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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시 중구역 교구동 50인민반에는 함경수영웅이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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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살을 가까이한 그는 년로한 몸이지만 황해남도 벽성군 옥정농장을 자주 오가며 농사일을 적극 도와주고있다.

 

알고보니 그는위대한수령김일성동지와위대한령도자김정일동지께서 까치산영웅, 숨은 애국자라고 불러주시며 각별한 사랑과 믿음을 부어주신 옥정농장 초대관리위원장(당시)이였던 함원장영웅의 아들이였다.

 

함원장영웅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을 입은 영예군인이였지만 자기 고장을 오곡백과 주렁지는 살기 좋은 리상촌으로 전변시킨 농촌일군이였다.

 

세월이 흘렀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원장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있으며 그를 원형으로 한 영화의 장면들도 머리에 떠올리고있다.

 

함경수로인이 아버지의 땀이 슴배여있는 옥정농장의 농사를 돕기 시작한것은 몇해전부터였다.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덕택으로 방방곡곡의 농촌들이 천지개벽되는 모습을 신문과 tv화면으로 볼 때마다 그의 눈앞에 제일먼저 어려온것은 다름아닌 고향 옥정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해동안의 로동생활을 거쳐 청년동맹일군, 당일군으로 성장하였으며 년로보장을 받기 전까지 중요기관에서 사업한 그가 고향을 떠난지도 어언 수십년이 되였다. 그러나 순간도 고향을 잊고 산적 없는 그였다.

 

그럴수록 농민영웅의 피줄을 이어받고 농촌에 태를 묻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고 자문해보았다.

 

그는김일성종합대학의 한 박사와의 련계밑에 척박한 땅에서도 높은 소출을 낼수 있는 새 품종의 종자들을 마련하였으며 영농물자들도 가지고 옥정농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걸음은 안해와 자식들과 함께 계속 이어졌다. 그 나날 그가 마련한 새 품종도입시험에서 일정한 성과가 이룩되여 농장의 알곡수확고를 높이는데 큰 도움을 줄수 있게 되였다.

 

사실 그는 여러해전에 뜻밖의 일로 몸을 심하게 다쳐 안해와 자식들의 부축이 없이는 먼길을 다니기 힘든 상태이다. 무릇 사람이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면 고향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고 하지만 함경수로인의 소행은 비단 향토애 하나만 가지고 설명할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더구나 영웅칭호를 받은 그가 국가의 혜택속에 여생을 편안히 보낸다고 누가 말할 사람도 없다. 그러나 그는 영웅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향유의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생의 말년까지 고향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아버지의 모습에 항상 자기를 비추어보며 인생의 한구간한구간을 이어갔다.

 

옥정농장과 함경수로인의 가정사이의 인연은 오늘도 계속되고있다.

 

그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군 한다.

 

《집에 정히 간수한 부모의 영웅메달, 훈장과 렬사증을 늘 바라보며 산다고 하여 근본을 지키는것이 아니다. 조국을 위해 피와 땀을 바친 그들의 한생을 잊지 않고 그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할 때 인생의 자욱자욱이 빛나는 법이다.》

 

하기에 사람들은 함경수로인의 가정을 영웅가정이라고 존경담아 부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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