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그날>, 목소리로 시대를 기록하는 가수 박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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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1급 가수 박은화의 음악 인생과 고향 사랑
“잊을 수 없는 그날/ 장백산도 춤을 추네/ 그대가 우리네 마을 오셨네/ 정다운 친인처럼…”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한 얼굴을 떠올린다. 바로 연변가무단 국가1급 가수 박은화이다.
노래가 울려퍼지면 얼굴이 떠오르고 목소리만 들어도 그 가수를 련상할 수 있다는 것, 이는 가수에게 평생 갈 가장 큰 자산이자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기도 하다. 단 한 음표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 목소리가 대표성을 지녀야 하고 생생한 감정과 진실된 호흡이 담겨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연변의 관광 열풍 속〈오색아리랑>이 막을 올렸다. 거기에 동북리그 홈경기장 문예공연은 물론 연변의 문화예술을 알릴 수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박은화가수, 요즘 그는 그야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23일,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연변 문화예술의 매력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박은화가수를 만나 그의 음악 세계와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들어보았다.
“운명같아요.”… 별다른 계기 없이 순리처럼 흘러간 음악의 길
음악을 시작한 계기라 할 것도 없이 박은화는 어릴 적부터 노래에 남다른 소질을 드러냈다. 다섯살 때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동요 <은하수>를 열창해 상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일찌감치 증명했고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그는 음악의 길에 들어섰다.
“소학교 4학년 때부터 초중을 졸업할 때까지 방학만 되면 연길로 달려갔어요. 강신자선생님이 계몽 스승이셨는데 음악의 기본은 물론 인생의 자세까지도 많은 가르침을 주셨죠.”
그렇게 그는 방학마다 국가급 판소리 무형문화유산 전승인인 강신자교수를 찾아가 조선족 전통 민요를 배웠다. 어린 나이에 힘들 법도 했을 왕복길이였지만 그 반복된 려정이 지금 돌이켜보면 오히려 그의 예술적 정체성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소중한 밑거름이 되였다.
그렇듯 모든 것이 순탄할 것만 같았던 음악의 길, 의외의 곳에서 첫번째 벽에 부딪치게 될 줄이야. 학급에서 줄곧 부반장 직무를 담당하고 성적도 우수했던 딸애를 보면서 부모님은 그에게 음악은 취미로 충분하다며 학업에 더 집중할 것을 권했다.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버팀의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 박은화씨는 공부를 선택했고 노래는 그저 취미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러나 운명은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손을 내밀었다. 훈춘시제2고급중학교 시절, 모교 방문 문예 행사에 참석했던 동북사범대학 음악교수 김순애선생이 박은화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음악공부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 한마디는 박은화의 마음에 다시 불씨를 지폈다. 더 이상 딸의 음악적 재능을 랑비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부모님도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하며 딸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원래는 공부의 길을 더 바라셨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그랬듯 제 선택을 존중해주고 어려운 순간마다 항상 곁에서 지지해주셨어요. 제가 이 길을 걷는 데 그 힘이 너무 컸습니다.”
집까지 팔아가며 딸의 예술 뒤바라지에 온힘을 쏟는 부모님을 보며 박은화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는 다짐을 했다. 음악을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 그의 꿈은 한층 커졌다. 더 넓은 무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게 이때 또 한분의 은인을 만났어요.” 박은화에게 좀더 높은 대학을 바라봐도 되겠다며 격려를 해주었던 림정교수의 조언에 따라 그는 중국음악학원 입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중앙민족대학 음악학원 교수이자 저명한 성악가인 림정교수를 찾아 북경으로 향했고 그의 지도를 받으며 박은화는 성악 공부에 몰두했다. 박은화의 우스개처럼 코피를 쏟으며 공부한 끝에 우수한 성적으로 음악 명문 중국음악학원에 진학했다.
다시 고향으로, 고향을 노래하는 가수로
‘산 밖에 산’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명문 음악학부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마친 박은화는 졸업후 북경에 자리를 잡았다. 3년 동안 다양한 사업 현장을 경험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하지만 북경에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지… 그는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많은 생각 끝에 박은화는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향행을 결심했다.
대도시의 화려함보다 익숙한 그리움을 선택한 그는 그렇게 연변으로 돌아왔고 우연한 기회에 연변가무단에 입단하게 되면서 고향의 무대에서 새로운 음악 인생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연변은 ‘가무의 고향’이잖아요. 그리고 연변가무단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중국 조선족 종합예술단체이구요. 그 일원으로서 저는 조선족 가무만이 지닌 독특한 매력과 특색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성악을 전공한 박은화는 연변 전통민요의 정서와 성악적 기교를 자연스럽게 융합하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이를 통해 대중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동시에 시대 흐름에 발맞춰 연변의 예술을 전국 무대는 물론 세계로 널리 알리고저 하는 포부를 드러냈다.
목소리로 시대를 기록하는 가수
장인처럼 쌓은 시간이 있었기에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단히 붙잡을 수 있었다.
2015년 7월, 습근평 총서기의 연변 시찰을 계기로 시경춘선생이 작사하고 주룡선생이 우리말로 개사하고 저명한 조선족 작곡가 상남선생이 작곡한 노래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박은화는 자신의 목소리로 고스란히 전하며 듣는 이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10월 5일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매주일가’를 통해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방송되면서 박은화는 일약 시청자들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연변은 물론 전국 무대에서 초청이 이어지며 그는 명실상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가수로 우뚝 섰다.
나아가 대표곡 <잊을 수 없는 그날>로 박은화는 2016년 길림성음력설문예야회에 올랐다. 같은 해 3월에는 cctv-15 음악채널 ‘민요·중국’ 프로에 출연하여 조선족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우리말로 노래를 불러 연변의 음악을 전국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렸다. 특히 이 노래는 2017년 장백산문예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앨범으로 발매되며 여러 영예를 두루 안았다.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저 하는 마음은 박은화로 하여금 쉼없이 달리게 했다. 습근평 총서기의 연변 시찰 10주년을 맞아 2025년 7월 1일에 <잊을 수 없는 그날>(감은분진의 10년) 특별음악회를 열었고 2025년에 발간된 《해란강에 얽힌 정—잊을 수 없는 그날》(情系海兰江·难忘的那一天)에서 박은화는 이렇게 말했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을 더욱 깊이 있게 불러 이 노래가 <붉은 해 변경 비추네>처럼 세대를 넘어 전해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소리로 기억되는 예술가, 연변을 알리는 ‘홍보대사’
박은화의 음악은 친근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전통 민요의 정서를 바탕으로 특유의 감성과 리듬이 살아있어 소수민족 특색 민족 성악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은 전통 민악의 선률이 목소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민속 풍격을 그려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그는 목소리만으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고 믿는다. “목소리가 아름답고 특색이 있다는 말은 가수로서 최고의 찬사”라며 그는 자신만의 음색을 통해 민족음악의 계승과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사명감을 거듭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ai기술이 주목받고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쏟아지는 요즘, 박은화는 또 전통음악이 어떻게 젊은 세대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세련된 편곡과 다양한 플래트홈을 활용한 소통 방식을 모색하며 시대와 함께 호흡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박은화는 단순한 가수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중국음악가협회 회원이자 길림성음악가협회 부주석이며 길림성 제12기, 제13기 정협위원으로서 그는 민족문화 발전을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민족문화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문화예술 방면에 관한 여러 건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가수에게는 무대가 제1선이고 고향의 무대, 그곳은 저의 전부입니다”
인터뷰 내내 박은화는 고향과 음악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다. 그에게 음악은 이젠 직업만이 아닌 삶의 리유이자 고향과 소통하는 언어가 되였다. 고향을 알리고 고향의 문화를 알리고 고향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그의 음악적 신념이라면 그의 음악 철학은 곧 대중과 호흡하는 살아있는 예술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독특한 매력을 지닌 조선족 가무는 시대에 발맞춰 전국과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는 박은화가 자주 하는 말이다. 수년간 그는 조선족 문화예술을 알리는 데 힘쓰며 중국 조선족 문예사업의 전승과 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해왔다.
“중화 우수 전통문화를 계승·발양하고 중국 조선족 문예사업의 전승과 발전에 기여하겠습니다.” 이는 또 변함없는 박은화의 목소리이자 목소리로 연변을 알리는 ‘홍보대사’로서의 다짐과 포부이기도 하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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